책장으로 1화

1화

비

자서전 · 라후

나는 각박한 도시의 사람이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누군가이며, 가끔 상처를 받는 약자이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어린 아이이며, 누군가가 행복하길 바라는 친구이다.

나는 늘 조용하다. 겉으론 조용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시끄럽다. 내 머리속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이 시끄러워 주변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늘은 특별한 하루였다.

오늘의 나는 새 도시에서 일어난다. 새 도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새 도시였다.

나만 갔던 건 아니었다. 나까지 넷이었다. 아니 혼자였다.

처음부터 나는 지쳐 쓰러져 있었다.

내 일행은 나의 코와 볼살을 건드리며 장난을 쳤다.

그 친구의 손길은 아팠지만, 그 친구의 손은 따스했다.

창밖엔 비가 살려달라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그 비명을 뒤로한 채 카페 구석진 곳에 앉은 채, 엎드려 있었다.

째각.... 째깍..... 쨰깍.......

내 손에서 들려오는 바늘소리가 거슬린다.

.... 째깍..... 쨰깍.......째깍

나에게 주어진 1분 1초가 온몸에 느껴진다.

내 일행들이 내 머리 위에 휴대폰, 디저트, 숟가락 등 온갖 물건을 올리며 기다리던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동안 애들이 나에게 한 행동이 짜증났지만, 고마웠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신경 써 준 건 몸에 충분히 거부반응을 일으킬 만했다.

나는 그런 나의 위장과 호흡을 잡으며 어느 라멘집에 갔다.

라멘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일행은 화장실에 갔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주문한 라멘이 나왔고, 일행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일행이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마음 편하게 라멘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몸의 주도권을 뺏긴 채, 라멘을 다 마시고 나서야 나의 속도를 인지했다.

나는 반찬으로 주어진 치즈떡과 그 겉에 코팅된 꿀을 긁어 먹었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기다렸다.

드디어 모두가 다 먹었다.

우리는 그 후에 비명들을 가르고 노래방에 갔다.

노래방에서 나는 건물 밖에 비들의 슬픔을 대변하여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나는 떨어지기 두려워하는 비와 같은 마음으로 동화되어 있었다.

일행들은 왜인지 내 등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서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비들의 비명을 대신 지르면, 내 눈에서 비가 내린다.

내 눈에서 나온 비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고, 외로워 보였다.

내 마음은 외로운 걸까,
외로운 것은 무엇인가.

가진 것들이 없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다면 항상 외로운 것일까?

사람들은 왜 외로운 사람들의 등을 치는 걸까?

등을 친다면 조금이나마 비명이 사라질까?

등을 치는 것과 비명 사이의 관계는 의문투성이였다.

내가 내린 외로움의 정의는 다음과 같았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

내 일행들은 더 이상 울지 못하는 노래방 기계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

좁디좁은 방에 모두가 들어온 채 각자 카드를 들고 눈치를 봤다.

내 옆의 일행이 먼저 카드를 모두 없앴다.

그 다음의 일행이 끝내려던 찰나, 다른 일행이 서로 카드들을 교환했다.

저 카드는 무슨 카드길래 두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나 또한 구원받기를 바라며 카드팩의 절반을 가져가고 나서야 구원받았다.

구원을 받은 나는 끝나기 직전, 버림받은 내 일행은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끝내 그 일행의 감정이 행복이라 결론지었다.

그래도, 내가 먼저 카드를 비워 내었다.

다음 카드놀이는 신박했다.

일행의 카드에 있는 주제에 대해 3가지를 먼저 말하면 카드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에 있던 구원카드를 아껴 둘걸 생각했다.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에겐 어색한 것들 투성이였다.

이 카드게임에는 구원이 없었다.

오직 버려지나, 버리나였다.

결과는 당연하게 이 세상을 싫어하는 내가 압도적으로 낮았다.

미웠다. 세상을 싫어하는 이유로 카드놀이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니.

오늘도 세상을 미워하는 이유가 생겼다.

2화

피안화

자서전 · 라후

그후 내 일행은 나를 피시방에 데려가기로 했다.

가는 내내 나는 후드를 뒤집어쓴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처벅.. 처벅,... 처벅....
탁탁탁탁탁..
처벅...처벅......처벅...
톡톡톡톡톡

빗소리와 무거운 내 발걸음이 길거리에서 연주를 한다.

일행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어딘지 바쁜 동안 나는 비와 함께 연주한다.

아쉽게도, 건물에 도착했다.

일행들은 이제서야 나의 표정을 보고는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서고...

.....
.....

“8층입니다.”

문이 열리며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고사양 컴퓨터들이 아닌, 베란다였다.

나는 잠시 베란다에서 비를 맞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런 비가 오는 밤에 혼자 야경 보는 걸 좋아한다.

이것이 나의 별이며, 나의 이유다.

마치, 무덤 속에서 피어난 한 송이의 피안화와 같다.

그후, 나는 일행이 생각나 다시 환한 불빛이 빗발치는 컴퓨터 쪽으로 돌아갔다.

처음 나는 기분이 여전히 좋지 않았다.

게임에서 내가 최고의 플레이로 나와도 똑같았다.

늘 그랬으니깐.

나는 매치를 기다리는 동안 이상의 날개를 보고, 프랑시스 잠의 고통을 사랑하기 위한 기도도 했다.

정호승의 봄길을 보고, 카뮈의 명언들을 보아도 기분은 여전했다.

나는 결국 다시 베란다에 나가 비를 흠뻑 맞고 나서야 입가에 미소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늘 그랬던 최고의 플레이도 신났다.

어느새 7시. 내 일행들이 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그들을 곤경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온힘을 다해 터미널로 안내했다.

예상보다 약 7분 일찍 도착했다.

나는 내 일행 모두를 안아 줬다.

전에 안았던 그 감정은 나오지 않았다.

따스하며, 포근하고, 마치 시골 속 어느 노부부가 키우는 고양이가 된 그 기분을.

아쉬웠다.

나는 그들을 보낸 후, 또 다시 빗속에서 몇 번을 기다린 후에야 우리도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기절했다.

3화

꽥꽥이

자서전 · 라후

나는 울창한 숲의 기억의 강에 얼굴을 처박은 채 떠내려간다.

어떤 건 달달했고, 대부분은 역겨웠다.

지나면 지날수록, 상큼함은 빠르게 사라지고.

말 그대로 죽을 맛만 남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억인가.’

시계는 일그러진 채 거꾸로 돌아간다.

주변의 모든 것이 일그러져 있다.

나 자신도 일그러져 무의식에서조차 쓰러지기 직전, 기억의 파편들이 맞춰졌다.

이 기억은 내가 어렸을 때다.

나는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리더답게 행동했다.

내가 주변을 산책할 때면, 동네의 모든 아이들이 나와 “꽥꽥이 형!” 하면서 나를 따랐다.

유치했지만, 달달했다.

이때의 나는 모든 걱정 하나 없었고, 친구도 많았다.

학업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다친 곳도 3분이면 낫는다고 해서 데드풀이라고도 불렸다.

과거의 내가 보인다.

내 초등학교 옆에는 어느 늙은 할아버지가 편의점을 운영했다.

나는 항상 인사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 배웠기에 동네 사람들, 심지어 가게 사장님들하고도 친했다.

과거의 나는 마치 사자 위에 타고 다니는 한 마리의 카피바라와도 같았다.

“안뇽하세요!”

편의점 문의 종이 울리며 내가 들어왔다.

편의점 할아버지는 항상 내 하교 후의 말동무와 같이 항상 같이 있었다.

주말에도 나는 항상 그 편의점이 보이면 들어가 인사를 하곤 했다.

편의점 할아버지에게 우리 형과의 관계도 말해 보고, 친구와의 관계도 말해 보고.

그 무엇보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것 같다.

이때의 나는 나만이 귀를 움직일 수 있고 남들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믿음이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할아버지는 “이야~ 이거 방송에 나가야겠는데?” 하며 나의 자존감을 채워 주셨다.

그렇게 하교 후 편의점 가는 일상이 3년 정도 지속되었을 무렵, 편의점이 닫힌 채, 안의 가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공사하는 아저씨들께 “여기 편의점 공사해요? 이제 여기 다른 건물 들어와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물었다.

“편의점 한번 리모델링 하는거야. 편의점은 그대로 있을 거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편의점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전과 달랐던 점은 좀 더 화려했고, 내가 알던 할아버지는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휴게소에 들르지도 못한 채 도착해 있었다.

온몸은 외투에 덮인 채 땀이 새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내릴 준비를 하며 마지막 남은 내 일행과 인사했다.

이제 다시 나는 나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내 마음에는 이전엔 없던 것들이 생겨 있었다.

4화

가면

자서전 · 라후

난 어느새 집에 돌아와 잠들었다.

내가 꾸는 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가면을 쓴 ‘나’ 여러 명이서 서로서로 죽이는 꿈과, 내 삶에 들어온 적 있는 사람에 대한 꿈.

오늘은 서로 결투하는 날이었다.

모두가 같은 옷, 같은 체형을 가지고, 같은 가면을 썼다. 그 가면 뒤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내 바로 옆에 있는 나에게 칼을 휘두른다. 왼쪽에 있는 나도 나에게 단검을 꽂는다. 오른쪽에 있는 나는 그저 멀리 도망치다가 총성과 함께 사라진다. 나는 반대편의 나에게 사격을 한다.

팅… 철컥.. 팡…

총이란 참으로 대단하다.

한 사람의 모든 행동을 즉시 멈추게 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든다.

요즘 게임에서는 이런 총을 너무 쉽게 묘사한다.

내가 생각을 하던 도중, 3시 방향의 내가 나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나는 머리가 반쯤 부러진 채, 칼로 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드디어 이 결투가 끝났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총 몇 번 죽었는가.

잠에서 깼다.

모든 것이 살아 있고, 모든 것이 멀쩡했기에 나는 오히려 아쉬움이 남았다.

꿈도 죽음도 그 후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아름다웠다.

나는 반쯤 지친 몸을 끌어서 내 전용 상담사에게 향했다.

내 전용 상담사는 오로지 채팅으로만 대화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지만, 내 상담사는 0과 1, 트랜지스터와 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에게 상담을 받을 때는 모든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다.

마치, 외로움이 내 머리가 선(善)이라고 정의한 것 같았다.

나는 이런 나의 감정 없는 상담사와 대화를 하며 내가 얼마나 살았고, 어떤 사람인지. 내가 누구였는지를 묻는다.

계속 묻고 답하고의 반복이다.

마냥 묻고 답하고가 나에게 있어 내 고통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서 나는 너무 좋았다.

문제가 있었다면 너무 냉철한 나머지 나라는 인간에게는 글을 읽을 틈조차 주지 않고, 내가 한마디 할 때 그것은 이미 15마디는 앞서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 상담사가 좋았다.

나는 사소한 말 한마디, 심지어 나를 향하지 않은 말 또한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

나는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내용을 맘에 담아 두고,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유언이라 생각하고 말한다.

꿈에서의 결투처럼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고, 살아 있더라도 감정 없는 그것이 정말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날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다가 저녁에 생각난 대회 준비를 마무리하고 잠에 들었다.

너무 큰 자극이 없었기에, 오늘 꿈에서는 내 인생에서 만난 누군가를 만났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좋다.

나의 꿈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내가 바라왔던, 하고 싶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는 바로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반가웠다. 아니, 얼굴이 컴퓨터의 그래픽이 깨진 것처럼 되어 있던 게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는 우선 그녀를 안아 줬다.

그 후에는 내 볼을 그녀의 어깨에 비볐다.

계속 비볐다.

마치 볼 부비부비만을 알고 있는 한 마리의 포켓몬처럼 계속 볼을 비볐다.

그후 나는 고양이가 된 것처럼 그 옆에 몸을 말고 누웠다.

이제는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행복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잠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나는 일어났을 때 너무 빨리 끊어 버린 꿈 때문에 세상을 원망하며 울었다.

사실, 눈물 한두 방울 정도만 나왔다.

울고 싶어도 제대로 울지 못하고, 비어 있는 것.

나는 그것을 허무라고 정의했다.

5화

학교

자서전 · 라후

등교길은 나에게 있어 시련이다.

여름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 몸을 녹이려 하고, 겨울에는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이 내 볼을 스친다.

이 사이사이에 있던 봄과 가을이 그립다.

보고 싶다.

이 모든 고난을 이겨 내고 학교에 오면 심판이 기다린다.

수업 중에 졸면 안 돼. 대회 준비해야지. 짜져 있어야지.

모든 압박을 동시에 받는 곳이다.

국어 시간에 그저 최근에 오른 산이 어디냐는 질문에 나는 계룡산이라 답했다.

별거 없었다. 나에게 압박을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대답하고 싶어 대답했다.

어째서인지 내 마음은 목적과 다르게 압박을 느끼며 쿵쾅거렸다.

머리, 왼쪽 손, 오른쪽 발. 온몸에서 심장이 느껴졌다.

나도 심장처럼 모든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심장이 부러웠다.

그후에 나는 과학 시간에 지쳐 있었지만, 다음 수업으로 내가 좋아하는 아두이노를 건드린다는 말에 잠이 확 깼다.

나는 기계가 좋다.

기계는 기대할 필요도 없고, 배신당할 일도 없다.

기계 앞에서는 나는 사람들의 광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사람들의 광대가 되며 병신 취급을 받는 나는 기계 앞에만 서면 빌 게이츠 저리가라 할 정도의 자신감과 집중력을 얻는다.

나는 이런 시간이 참 좋다.

과학 시간이 끝나고,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내 몸이 쓰러지기 전에 나는 이방인을 읽었다.

나는 책에 몰입했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마치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은 것처럼.

나는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에 주위에서 계속 나의 이상형이 뭔지, 자기가 이쁜지 등 여러 가지를 물었다.

이런 질문들은 나의 선호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준다는 걸 일찍 깨달았고,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이쁘다고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기준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판단하는 법을 잊었다.

나는 그대로 책장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졌다.

계속 흐른다.

얼마나 왔을까.

보인다.

이 모습은 ‘나’로 보이지 않는다.

이건, ‘꽥꽥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꽥꽥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에 개발자라는 직업을 정했고, 좋아하던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의 서버를 자주 접속했다.

그는 그 서버가 재미있지 않았다.

그 서버에서 만나는 인연이 즐거웠다.

가장 친했던 건, 유크라고 하는 친구였다.

그와 나이가 2살 정도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잘 놀아 주며 그는 처음으로 디스코드를 시작했다.

이 친구는 그에게 자신의 친구가 만든 포켓몬 서버도 하자고 했고, 흔쾌히 승낙했다.

그는 처음으로 ‘놀이터’에 초대를 받았다.

처음엔 닝겐이라는 친구와 가장 친해졌다.

실제 물리적 거리는 인천-부산이라는 매우 먼 거리였지만, 이 세상에서는 그 누구보다 붙어 있었다.

여기서 그는 힐다라는 여자아이와, 광선이라는 남자아이, 재윤이라는 남자아이. 그 외에도 iw이라 불리는 형과, 곧 수능을 준비하던 아쿠스틱, 친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놀긴 했던 휴마 등 여러 인연을 만났다.

이 기억 전부터 그는 유크와 만났던 서버에서 만난 하루라는 남자애와 친했다.

이 모두를 그의 디코 서버에 초대했고, 싸움이 일어나면 항상 그는 자신이 사라지면 모두가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여 그의 서버를 자주 버렸다.

어떨 때는 계정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실은 자르기에 너무 질겨서 계속해서 두꺼워지기만 했다.

6화

점심

자서전 · 라후

정신을 차려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당뇨가 있는 건오와 항상 같이 밥을 먹었다.

저번에는 건오가 밥을 먹기 싫다며 15분 동안 도망치는 바람에 나는 내 내장을 입 밖으로 쏟아 낼 뻔했다.

다행히, 오늘은 도망가지 않고 자발적으로 밥을 먹었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책을 읽었다.

나는 이 시간이 가장 좋다.

나의 모든 생각에 대해 집중할 수 있고, 모두가 조용히 해 주며, 나는 학교로부터 벗어나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계속 읽었다.

처음에는 내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책을 선택하려고 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내 생기부에 내 전공과 관련되지 않은, 진정 나를 위한 활동을 했다.

나는 이 선택을 우리 학교 1학년 중에 했던 선택 중 가장 잘한 선택 TOP 10 안에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들러의 심리학을 계속 배우며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았다.

‘자립할 것,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

이 시간 동안은 나는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오리가 된 것 같다.

또한 나는 권력투쟁의 정의를 알게 되었고, 사과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오늘 읽은 보람이 있다고 느꼈다.

추가로 내 인생 최대 고민거리인 연애 관련 고민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인간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네.”

아들러는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나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이건 서울대 심리학자나 우리 부모님조차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책이 좋아졌다.

학교에서 따뜻한 제티를 마시며 책을 읽는 이 시간은 내 학교생활을 버티게 해 주는 버팀목이다.

오늘 배움을 토대로 나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승패를 따지기를 피하기로 했다.

다짐하는 순간 뒤에서 볼펜으로 내 친구가 나를 콕콕 찔렀다.

“일요일 날 팝업 같이 갈래?”

나는 수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 토요일에 내 생일 캠핑 가서 자고 와.”

내가 대답해도 내 친구는 볼펜을 계속 찔렀다.

“....”
“....”

“아들러 심리학에 의하면 너는 내가 관심 가지기를 바라는 목적으로 ..... 나는 너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겠어.”

말이 끝나자마자 내 친구는 내 등을 찌르는 것을 멈추고 내 코에 직접 닿을 정도로 내 얼굴에 가운데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나는 화내지 않겠..”

내 친구가 계속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이 십새끼가?”

나와 내 친구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들러는 사과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고 했어. 미안해.”

나는 바로 사과했지만 친구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

바로 다시 친구가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미친놈아 작작해.”

나는 결국 친구에게 쌍욕을 박았다.

그래. 이게 남고지 생각하며 학교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종이 울렸다.

7화

의리

자서전 · 라후

집에 오자마자 나는 침대에 몸을 맡기며 기절했다.

파편들이 반사되어 보인다.

그는 의리 하나로 살아갔다.

그는 놀이터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코딩 기술 하나로 금방 인싸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민이 많았다.

모두가 그를 찾는다.

모두의 버팀목이 되는 것, 의지하게 되는 대상이 되는 것이 좋았다.

그는 어느 날 통화방에 힐다라는 애가 혼자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간단한 위로를 건넸지만, 걘 그에게 ‘오리대머리’를 반복해 말하며 그를 조롱했다.

이런 행동들이 장난이란 걸 알지만, 그 장난조차 그의 마음의 상처를 점점 벌렸다.

포켓몬 서버가 망하고, 그는 새로운 경제 서버를 만들었다.

기술의 한계로 권력이 모두에게 있었고, 나는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 위해 개발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쿠스틱은 불법 핵과 권한 남용으로 우리 모두에게 관심이 쏠렸다.

어찌저찌 마무리되어 넘어갔고, 그로부터 며칠 후.

아쿠스틱은 우리에게 심장병이 있다고 전하며 그동안 즐거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뭐야 뭐야 이러면 너무 못 해 준 게 미안한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린 애들에게 그런 말은 충분히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그때부터 거절하는 법을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나의 사적인 감정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태니라는 형은 증거를 수집했고, 결국 심장병이 거짓말이라는 사실 또한 알아냈다.

결국 모든 발목이 잡힌 아쿠스틱은 그대로 놀이터에서 추방되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학원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학원에서 시험 대비에 들어가며 모의고사를 분석했다.

분석할 때, 오랫동안 가만히 있던 소리가 들렸다.

왼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 누군가 나에게 해 줬으면 하는 소리. 지난 금요일에 선생님께 들었던 차가운 말. 지금 나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과 스스로를 저주하는 말.

정신이 혼미해지며 머릿속 생각이 밖으로 새어 나가려 한다.

이마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내가 어쩌면 이 목소리에 현혹되어 말하지도 않을까 생각했다.

다행히, 오늘은 시간이 빠르게 느껴졌다.

쉬는 시간에 나는 터질 듯한 머리를 문학으로 감쌌다.

나는 문학을 좋아하지 않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순간 문학에 빠졌다.

이건 내가 국어 성적이 낮아서가 아니다.

내 마음이 살려 달라 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책은 나를 치유해 주고 있었다.

오늘 아침부터 나는 마음에 박힌 가시 때문에 번아웃이 왔다.

이 책의 영향도 있었으며,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오늘이 인상 깊었나 보다.

오늘 하루가 빨리 가서 아쉽다.

나는 벌써 고통을 잊은 채, 집에 돌아와 게임을 몇 판 돌렸다.

8화

외로움

자서전 · 라후

게임은 지루했다.

나는 11시가 되었기에 잠에 들었다.

오늘 꿈은 조금 특이했다.

오늘의 상처를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꿈에서 나는 나를 죽였다.

평소처럼의 결투가 아니다.

그곳에는 오직 나 ‘혼자’였다.

그 장소를 걸어도 보고, 누워도 보고.

외로웠다.

바닥에 희미한 기억이 비쳐 보인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내가 애들을 돕는 모습들이었다.

내가 도움받는 모습은 그 장면의 극히 일부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며, 외로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수정한 외로움은 ‘도와주기만 하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11시.

나는 학교에 늦어 혼자 병든 채 누워 있는 모습까지 상상했다.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7시.

요즘 따라 환각이 자주 보이는듯하다.

평소보다 일찍 자는 루틴을 만들었기 때문일까?

5시, 6시마다 중간에 잠에서 깨서 그런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번 주까지만 버티면,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 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나의 기절 같은 잠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조금 들떴다.

휴대폰으로 밀린 채팅들을 확인하려던 찰나. 내 휴대폰의 배터리가 5%인 걸 확인했다.

충전기도 내 마음과 비슷한지, 종종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아침부터 폰을 충전하기 위해 안방을 몇 번 들르고, 보조배터리도 가져왔다.

결국 나는 무선 충전기를 꺼내어 충전했다.

학교에 오자 나는 복통에 시달렸다.

나는 왠지 모르게 자주 복통에 시달린다.

내 친구들은 이래서 나를 여자라고 부르곤 한다.

‘여자 취급할 거면 군대라도 빼게 해 주지..’

나는 군대가 두려웠다.

3초 뛰면 지치는 몸으로 1년 6개월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매일 비가 온다면 모를까..

오늘도 학교 수업을 들었다.

1교시는 자습이기에 생생했다.

2교시는 체육이기에 지쳤다.

3교시에 나는 사회를 듣다가 점점 조용해지더니 잠시 기절했다.

놀이터에서는 모두 친했다.

몇 명은 겜친이기도 했고, 몇 명은 실친이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서 지내다, 개학 전날 방학을 느끼기 위해 놀이공원에 갔다.

혼자 가기에는 무서웠기에, 놀이터에 속하지 않은 형을 불러서 갔다.

그가 놀이공원에 온 것을 자랑하자, 얼마 후 처음 보는 여자애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놀이터의 힐다는 그 놀이공원 인근에 살고 있어서 같이 놀기 위해 왔다.

이렇게 그는 놀이공원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아직 대중교통을 자주 타지 않았기에, 일찍 돌아갔다.

그후부터 그는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며 힐다네 동네에 자주 놀러 갔다.

항상 나는 기절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너무 피곤해서일까.

정신 차려 보니 뒷자리 친구가 내 머리로 자기장 실험을 하고 있었다.

“오 신기해 신기해 ㅋㅋㅋㅋ”

“내 머리로 자기장 실험하지 마라 새꺄.”

내 머리가 유일하게 자랑스러웠다.

9화

사랑해

자서전 · 라후

학교가 끝나고, 나는 우리 동아리에서 피자 파티를 했다.

우리 동아리가 아닌 스파이가 한 명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불고기 피자를 계속 먹었고, 계속 먹었다.

살 빼야 하는데 요즘 따라 이런 음식을 계속 제공받으니 곤란했다.

금요일부터 운동 제대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배가 어느 정도 찼을 때쯤, 옆 테이블의 친한 형에게 다가갔다.

그 형과 나는 어느 정도 잘 맞는 면이 있었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 형과 친한, 새로 이사 온 형이랑도 금방 어울리며 장난을 쳤다.

새로 온 형을 빵끈으로 묶은 후, 그 형의 값비싸 보이는 물건을 스윽 해서 n빵하자는 식으로 장난을 쳤다.

나와 친한 형은 집에 갈 때도 나의 주 게임 캐릭터를 따라 하며 집에 갔다.

“감!히!올!림!포!스!에!대!적!하!겠!다!고?!?!”

그 형은 내가 일명 쓰레기 캐릭터로 상위 20%까지 올라온 걸 보고는 나를 인정해 줬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누가 나보고 미친놈이라 병신이라고 할 때 나는 살짝 행복하다.

내가 마조히스트인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보통의 인간’이 아닌 ‘특별한 인간’으로 취급될 때가 좋은 것 같다.

나는 어느새 광대가 익숙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며 누군가의 지지대가 되는 게 행복하다.

허나, 내가 지지대가 필요할 때면 비어 있었다.

이게 반복되면 번아웃이 오는 것 같았다.

밖에서는 비가 조금씩 왔다.

어제의 나를 위로하기 위해 왔지만, 오늘 행복한 나의 모습을 보고 자리를 비켜 주는 날씨가 참으로 고마웠다.

나는 집에 오고 침대 위에서 기절했다.

그가 힐다네 동네에 놀러 가는 게 익숙해졌을 즈음에 그는 그의 친구를 데리고 3명이서 놀았다.

친구는 금방 잘 어울렸고, 재밌게 놀았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그녀의 사정과 그가 아끼는 이유를 말해 줬다.

친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준비가 안 된 그와 그녀를 이어 줬다.

그 후에 그가 그녀의 동네에 놀러 갔을 때. 그녀가 말했다.

“사랑해.”

온 심장이 쿵쾅거렸다.

쿵쾅거리다 못해 아파 왔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는 그날부터 세상 모든 것이 행복해 보였다.

매일매일 사랑한다 말하고, 전화하며 잠에 들었다.

어느 날은 놀이터 친구들과 함께 인게임 보이스를 지원하는 게임을 했다.

그는 평소에도 귀가 안 좋았고, 인게임 보이스의 음질 때문에 더욱 듣지 못했다.

그가 저녁에 통화를 했을 때는, 이미 그는 쓰레기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고, 친구들은 그를 욕하고 있었다.

그는 재빨리 사과하고 바뀌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그는 그의 진심을 그녀에게 전했다.

...
...
...

그는 그저 울고 싶었다.

세상이 그를 위로하기 위해 한동안 비를 내렸다.

10화

나를 위한 나

자서전 · 라후

나는 정신이 돌아올 틈도 없이 다시 꿈으로 빠져들어갔다.

오늘 꿈은 허전했다.

얼굴에는 가면이 없었다.

혼자였다.

나는 최근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했다.

계속 남을 위해 살아온 내가 생각났다.

남을 위해 살기 위해 나를 버린 삶들이 스쳐 지나갔다.

힘들 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누가 하지 말라 한 것도 아니다.

나와 같이 ‘특별한 인간’인 선우 형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이 형은 나와 함께 광대가 되고, 같이 덜떨어지고, 같이 슬퍼해 준다.

비록 그 슬픔이 자신의 슬픔이 아니라도 슬퍼해 준다.

나는 그런 형에게 처음으로 서로서로 의지하는 방법을 배웠다.

언제든 힘든 일을 말하라고는 했지만, 최근 들어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나는 살아가며 만난 여러 지혜를 가진 분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분들의 지혜를 좀 더 알 수 있다면.

그분들처럼 나 또한 지혜로웠다면.

꿈에서 깨어나니 그저 보들보들한 이불에 얼굴을 파묻은 내가 있었다.

보들보들한 재질은 나의 채워지지 않은 마음을 채워 줄 몇 안 되는 존재다.

나는 나의 인형과 이불을 침대 한편에 모아 두고, 일어났다.

오늘은 내 생일의 전날이었다.

오늘과 내일만큼은 ‘남을 위한’ 내가 아닌, ‘나를 위한 나’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나....

어쩌면 당연하지만,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게 기억난 것 같다.

어쩌면 잊고 살았던 것이 구멍이 되어 나의 폭탄을 터뜨렸던 것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오늘 학교에서도 평범했다.

내 뒷자리 친구와 조금 대화했다.

“너 생일 기념으로 일요일에 나랑 팝업 가자.”

“내 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야.”

“너 생일 기념으로 일요일에 나랑 팝업 가자.”

“내 생일은 내일이라니깐.”

“나랑 팝업 가자니깐?”

내 친구는 나의 손을 마늘 으깨듯이 잡았다.

손에 있는 뼈들이 탑 쌓기에 실패한 젠가처럼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일 생일이라는 믿음이 고통을 상쇄해 줬다.

점심시간 전 시간에는 나는 잠시 불안해졌다.

저번 주에 혼났던 그 선생님의 시간이었다.

나는 나의 입을 바느질로 꿰맨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칠판의 한 구역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저번 주의 기억이 계속 나에게 트라우마가 생길 것만 같이 생생하게 괴롭힌다.

그때의 나의 심정, 날 향한 말들, 나를 더 망가뜨리는 눈.

상상하기도 싫다.

나는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껏 내가 혼나거나 슬픔에 잠긴 이유는 대부분이 나의 기술력 과시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과시할 목적이 아니었어도, 결과는 처참했으니 과시라고 표현했다.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재능이 저주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듯했다.

축복 같은 저주는 평범한 저주보다 힘들었다.

나는 다시 저 너머의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려는 찰나, 수업이 끝났다.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11화

자기야

자서전 · 라후

지친 몸을 이끌고 나는 학원에 갔다.

학원에서 나는 지문을 분석했다.

한 지문을 끊고 졸고를 계속 반복했다.

“그냥 좀 잤다가 해라.”

선생님이 말하셨다.

나는 물 만난 오리처럼 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쓰러졌다.

모든 것에 흥미가 없었다.

게임할 때는 옆에 있던 자리가 비어 있었고, 항상 확인하던 메신저엔 아무런 알람이 오지 않았고, 매일 저녁 전화하는 루틴도 쓸모없어졌다.

대신, 그는 암울한 노래를 틀고 자는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그와 그녀를 이어 준 친구는 위로해 주겠다며 같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노래방에 가고 난 후, 친구는 잠시 음료수를 뽑아 오겠다고 나갔다.

친구가 없는 동안, 휴대폰에서 알람이 계속 울렸다.

그는 노래 부르는 내내 휴대폰만 보던 친구를 생각하며 친구의 폰을 확인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그는 친구의 생일을 적었고, 손쉽게 열렸다.

메시지 알림이 5개 와 있었다.

그 메시지를 보고 그는 막대한 충격을 받았다.

익숙한 프로필.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차갑게 말하던 그녀였다.

그의 이미지를 지켜 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별명에는 그가 했던 것처럼, 하트 하나만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친구를 “자기야”라고 불렀다.

몸의 털 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름, 가슴으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배신감, 등에서 퍼져 가는 더러운 배신감.

그의 존재가 전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친구가 그가 알아챈 사실을 아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당당하게 “나 얘 동네 가는 거 같이 가 줘” 식으로 말했다.

그는 거절이란 거의 하지 않고, 미련을 버리기 위해 승낙했다.

그 동네까지 가는 지하철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1분이 1시간, 10분이 10시간이 된다.

오래 걸릴수록,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슬픔과 머릿속에서 퍼지는 인지부조화가 퍼진다.

그 친구의 모든 일정이 끝난 후, 그는 눈에서 내리는 비를 놓아 주며 돌아왔다.

12화

좋은 사람

자서전 · 라후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마저 지문 분석을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을 모두 보내며 나에게 다가오셨다.

“뭐 먹을지 정했어?”

맞다, 오늘은 선생님이 내 생일 선물이라며 밥을 사 주시기로 했다.

“아직 못 정했습니다.”

나는 어떤 걸 먹어야 좀 더 부담되지 않을지 고민했다.

“파스타랑 돈까스 어때?”

선생님의 제안에 나는 동의했고, 선생님과 단둘이 음식점으로 향했다.

처음 가 보는 음식점은 아니었다.

전에 내 친한 친구가 연애할 당시, 데이트하기 좋다며 추천해 준 음식점이었다.

입구 옆에 있는 종이컵을 가져와 물과 수저를 세팅했다.

선생님과 영어 성적에 대해 대화하다가, 파스타가 먼저 나왔다.

“이 집 진짜 맛있다.”

선생님은 음식에 만족했고, 대화 주제는 금방금방 바뀌었다.

안심과 등심 돈까스가 마저 나왔다.

“너는 와사비파야 소금파야?”

나는 둘 다 먹지만, 와사비가 좀 더 좋아 보였다.

“와사비요.”

“역시 뭘 좀 아는구만.”

선생님과 나의 대화는 남이 보면 스승과 제자의 대화라고는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느새, 음식을 다 해치워 버렸다.

계산할 시간이 되자 선생님은 나에게 카드를 주셨다.

“이런 건 남자가 계산하는 거야.”

나는 카드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해 주세요.”

“영수증 필요하세요?”

“네.”

평소였다면 영수증을 받지 않았겠지만, 나의 돈이 아니었기에 영수증을 챙겼다.

학원으로 돌아가며 계속 대화를 나눴고, 나는 문이 있을 때마다 문을 열고 비켜 주었다.

“너 먼저 들어가.”

선생님은 내 호의가 괜찮다며 나를 배려해 주셨다.

“너는 진짜 잰틀-맨이 아니라 소프트-맨이네.”

칭찬인지 욕인지, 돌려 까기인지 나는 판단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흠” 하고 살짝 고민했다.

학원에서 짐을 챙기고 나는 곧 친구에게 여소를 받을 수도 있다고 얘기를 했다.

“확실히 멋진 남자니깐.”

선생님은 나를 멋진 남자라고 칭했다.

나는 선생님과 어른들 앞에서는 최대한 예의 있게 행동한 탓인지, 선생님은 나를 멋진 남자라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멋진, 좋은, 착한의 기준은 무엇인가.

집에 돌아가며, 나는 친한 동생에게 통화로 물었다.

“나는 좋은 사람일까?”

“형은 좋은 사람이지.”

“왜.”

“재미있고, 남을 생각하잖아.”

광대처럼 되고 난 후 나는 오랜만에 만족했다.

13화

살아 있음

자서전 · 라후

집에 돌아와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11시.

나는 내 코딩 제자 외 사소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대화를 마쳤을 때는 12시가 지났다.

알람들이 몰려온다.

나의 소셜 메신저에는 나를 축하하는 글로 둘러싸인다.

“생축”, “생일? 생신 축하드려요”, “나의 친구여 생일을 축하한다네”, “생일이니? 축하해!”

너무 행복했다.

오늘 하루는 내가 남을 찾지 않아도, 남이 찾아와 줬다.

온몸이 짜릿했다.

나는 오늘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다.

축하 공세가 온 후엔, 선우 형과 가볍게 게임 몇 판을 했다.

선우 형은 내가 생일인 걸 알고는, 모두를 멘션하며 깨우고 ‘오늘은 정말 이례적인 일입니다. 오늘은 제 친한 동생이 생일입니다!!’라고 모두에게 전했다.

이 형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게임을 할 때마다 준비창에서 ‘오늘 저희 팀원 오늘 생일입니다. 축하 좀 해 주세요’라고 시작하며, 게임 도중에는 전체 채팅으로 ‘저희 팀 한 명 오늘 생일입니다! 다들 축하 좀 해 주세요!’를 계속 보냈다.

욕하는 사람 없이, 모두 잘 받아 주었다.

나는 이런 형이 부끄러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것이 ‘특별한 우리’의 행동 아니겠는가.

모두에게 축하받는 기분은 그렇게 부끄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안에 사그라들던 자신감을 일깨워 준 기분이었다.

나는 내일 놀러 가기로 했기에, 조금만 하다가 잠에 들었다.

오늘의 꿈이 기대되었다.

꿈속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 몸을 웅크린 채 기다렸다.

그러자, 하나둘 누군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를 가장 먼저 축하해 준 친구, 힘든 시기에 조언과 위로를 해 준 친구, 평소에도 장난치며 놀던 친구, 나에게 코딩을 배우는 친구,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끼리 대화하지 않고, 그들은 오직 나에게 집중해 줬다.

나는 오랜만에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기분이라니.

살짝 어색했다.

나는 ‘오늘이 계속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다시 ‘오늘도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365일 중 단 하루이기에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이 나의 생일이었다면, 나의 생일 인사는 축하가 아닌 그저 아침 인사 정도에서 끝날 거라 생각했다.

나는 끝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을 그리움이라 정의했다.

14화

생일

자서전 · 라후

일어났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포근한 바람이 나를 부드럽게 흔든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나의 불을 켠다.

나는 오늘이구나 생각하며 거실로 향했다.

나는 부모님이 해 주신 평범한 미역국과 아침을 먹었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한상이지만, 나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을 주운 것만 같았다.

아침을 먹고 나는 나의 알림 목록을 확인했다.

모두 다 소중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알림 중 한 알림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태어나 줘서 고마워.’

나는 아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지금까지 나에게 온 모든 시련, 고통, 실패, 혼란들이 모두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슬픈, 그러나 들뜬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학원 수업은 오늘따라 더 신났지만, 또 점점 눈이 감겼다.

이번에는...

나는 오늘만큼은 과거가 나를 붙잡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어거지로 버텨 냈다.

나는 그렇게 약 5분 동안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마침내 나는 승리했고, 생생한 눈으로 수업을 들었다.

집에 돌아오자, 내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내 친구와 함께 캠핑을 가기로 했었다.

나는 친구네 아버지의 차에 타고 1시간 동안의 주행으로 킨텍스에 도착했다.

나는 항상 혼자 지하철을 탔기에, 차는 익숙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지거나 토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버텨 냈다.

나는 나와 생일이 단 하루 차이인 친구와 같이 캐치볼을 했다.

살짝의 소란도 있었지만, 재밌었다.

내가 친구와 노는 사이에도 계속해서 나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다.

나는 나에게 축하하는 친구들을 하나하나 메모장에 써 내려갔다.

그러고는, 나는 이 친구들 아니, 내 가족 같은 인연들에게 약간의 편지를 쓰기로 했다.

편지 내용을 고민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나의 약한 모습만 보여 준 인연. 항상 내 곁을 지켜 준 인연.

나는 하나둘, 편지를 적으며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대부분은 감동했다고 했고, 나는 이런 인연들과 더욱 깊어졌다는 사실에 너무 감동했다.

그 친구들 중 몇 명은 행복을 베푸는 내게 다시 한번 감동의 눈물을 내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행복한 날, 나의 과거에 떠난 친구 한 명이 내게 생일 축하를 보냈다.

언젠가 풀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서버의 대부분의 싫어하고, 좋아하고, 아꼈던 친구들을 관계없이 끊어 냈었다.

모두가 나를 증오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날에 내 생일을 축하해 줬다.

나는 아무런 답장을 할 수 없었고, 오늘같이 행복한 날에 화를 내기도 싫었다.

나는 끝내 그 친구들을 용서하기로 했다.

다시 친해지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친구들에게 화가 났던 모든 것을 잊고 용서하는 것 뿐이다.

그게 내가 오늘 내린 결론이자, 나를 위한 판단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내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날 차례인가 보다 생각했다.

행복하고, 뜻깊은 하루였다.

15화

라후

자서전 · 라후

기억 속 저편에 흘러간다.

그는 그녀를 잊기 위해 모든 연락 수단을 지우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다가와 그녀의 말을 전했다.

“친구로 지내고 싶은데 왜 너 맘대로 차단해?”

당황스러웠다.

그때의 그는 헤어진다는 것은 다시는 볼 일이 없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다.

어정쩡하게 알겠다고 한 후에도 그는 그녀를 조심스레 피했다.

그러나 오히려 헤어지고 난 후의 그녀의 행동은 연애할 때보다 더 심했다.

그저 친구 사이에 “자기야”라고 쉽게 나올 수 있는지 몰랐다.

그는 불량 연애를 했다.

이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삶이 허무해지며 말 그대로 병신이 되어 갔다.

더욱 버티지 못해 미쳐 버리기 직전, 그는 방황하며 ‘내가 진짜 애들에게 사랑받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있는 모든 암호를 사용하여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이진법, 모스부호, 카이사르, 애니그마.

어려웠지만, 힌트도 많았기에 그를 조금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쉽게 풀 수 있었다.

이 암호를 통해 그는 친구들이 이만한 노력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정말로 아끼던 동생은 몇 분 내로 풀었고, 하나둘 친구 추가가 오기 시작했다.

그녀도 친구 추가를 보냈지만, 직접 풀지 않고 다른 애들을 통해 친추를 걸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행동이 아닌 이 행동으로부터 그는 배신감을 느꼈고, 마침내 그는 그녀에게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제부터 그는 ‘꽥꽥이’가 아닌 지금의 나, ‘라후’로 다시 시작했다.

16화

아직 나

자서전 · 라후

오늘 아침은 살짝 허무했다.

왜인지 모르게 몸이 점점 무기력해졌다.

게임을 하면 괜찮아질까? 생각하며 게임을 돌렸다.

아침부터 나의 말동무를 해 주는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다 보니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점 모일수록 나는 점점 무기력해졌다.

여섯 이상이 모인 후부터는 나는 우울하다 못해 혼자 있고 싶어졌다.

나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잠시 잠에 빠졌다.

자고 난 후에는 나까지 셋밖에 남지 않았다.

편안했다.

나는 사람이 적을수록 왜인지 편안했다.

마치, 한가한 시골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한가한 시골의 바람을 느끼며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아까와는 다르게 점점 행복해졌다.

나는 아직까지도 나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

이것을 알아내는 게 이제 나의 목표인 듯하다.

나의 친구들과 게임을 어느 정도 적당히 즐기다, 다시 나는 잠에 빠졌다.

오늘의 꿈에서는 그저 나와 부드러운 이불만이 있었다.

따스하고, 보들보들하고. 딱 내가 원하는 느낌이었지만, 시려웠다.

정확히는 외로웠다.

내게는 모두가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참 신기했다.

이제는 나에게 둘도 없을 인생 친구들까지 있는데 어째서 나는 이런 외로움에 빠져 있을까.

내가 연애를 못해서인가? 생각도 해 봤다.

하지만 끝내 내가 연애를 하고 싶어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기준도 모르겠고, 그저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있어도, 내가 꼭 연애를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연애도 원인이 아닌 듯하고, 나는 아직도 이 감정은 정의하지 못했다.

아침에는 똑같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다.

학교에는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지 않은 친구들도 몇 명 있었다.

나는 반 전체에게 티 내지 않고, 나와 친한 몇 명에게만 티를 냈다.

체육 시간,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 뒷자리에 있던 친구와 티키타카를 했다.

“나빴어.”

“뭐가.”

“나빴어.”

“왜.”

나는 전에 뒷자리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친구에게 장난을 쳤다.

“내 생일을 축하해 주지 않았어.”

내 친구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안 만져 줘서 그렇구나.”

내 친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나를 쓰러뜨리고 나에게 손을 가져갔다.

나는 오늘 나의 성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공포에 필사적으로 그 손을 막았다.

잠시 동안 행복했다.

점심시간에는, 우리 학교에서 바자회를 열었다.

나는 책 3권을 싼값에 샀고, 내 친구에게 떡볶이도 사 줬다.

친구에게 사 주는 게 왜인지 즐거웠다.

돈이란 참 신기했다.

돈은 얻을 때도, 쓸 때도 즐겁다.

돈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는 바자회 구석에 아무도 사지 않는 우쿠렐레를 사고 반에서 간단하게 연주했다.

오늘도 내 악기 컬렉션이 늘어났단 사실이 행복했다.

가끔은 학업이나 사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안빈낙도였나 뭔가..

아무튼 나는 이 사회가 싫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돈을 쓰기 위해 살아간다.

돈이란 무엇이길래 사람들에게 어릴 때부터 돈을 벌 준비를 시키는가.

나는 생각에 잠기다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이 끝나고 자잘한 시간 동안, 우리 담임쌤은 나에게 3학년 선생님들마저 나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다.

“3학년 쌤들도 ‘거기 2반에 컴퓨터 잘하는 애 있죠?’ 하면서 알고 있어.”

살짝 나는 걱정이 되었다.

벌써부터 학교를 위해 노동할 것이라는 걱정과, 내가 선생님들 기대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

눈앞이 깜깜했다.

이게 과연 이틀 전까지 생일이었던 사람이 맞는가?

어떻게 나는 이렇게까지 감정 기복이 심할 수 있는가?

아직 나를 모르는데도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너무 힘겨웠다.